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도림(朴道林)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40043
  • 전몰일자 : 19510323

공훈사항

박도림 하사는 1932년 7월 8일 경상북도 청도군 문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50년 1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도림 하사는 낙동강 전투에 투입되었다. 박 하사가 배치된 낙동강 방어선에서는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9월 15일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낙동강 일대의 북한군 주력은 후방이 차단되었다.
박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파죽지세의 진격으로 9월 28일 서울탈환에 기여하고, 10월 9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10월 19일에는 평양에 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어 청천강 남쪽의 신안주 부근에서 재정비를 완료한 사단은 11월 20일 태천-구성-삭주-신의주로 진출하게 되었다. 북한군은 27일을 전후하여 연대가 방어 중인 대령강 동쪽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맞선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태천 동남쪽의 학봉동, 기우산, 토라산 일대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격전을 펼쳤으나 압도적인 병력으로 포위 공격을 기도하는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도림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박천 북쪽의 충막동-봉지리 선으로 철수하여 저지 진지를 구축하여 측 후방 돌파를 기도하던 중공군을 격퇴한 후 용산동 일대로 철수하였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중공군의 공세가 두 차례나 계속되면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시작되면서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한 후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그 후 1951년 3월부터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서울에서 북상하여 진격하였고 고양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였다.
박 하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앞장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도림 하사는 1951년 3월 23일 임진강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도림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3-ㅌ-04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