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현(朴德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2051
  • 전몰일자 : 19510203

공훈사항

박덕현 일병은 경상남도 울산군 원양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박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중순 제주도에 설치된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연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이 9월 16일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도 반격 중이었다. 사단은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파죽지세로 나아가 장사동-평해-울진-삼척-강릉(30일)을 탈환하면서,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했다. 연대는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하여 일일 평균 24km의 속도로 북진하여 강원도 장전, 통천을 거쳐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했다.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사단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사단은 미 제10군단의 안전한 원산 상륙을 보장하기 위해 원산 외곽선을 확보하고 잔적을 소탕했다. 10월 26일 원산에 상륙한 미 제1해병사단에 경계임무를 인계한 연대는 11월 4일 신북청으로 북상했다. 11일 연대는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연대의 선두부대가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성진-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공격에 맞서 분전했으나 진지를 돌파당했다. 1951년 1월 4일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포기하고 수원-이천-원주 선까지 철수하게 되었고, 이때 연대도 평창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전선의 간격을 뚫고 경북 영주 남대리 부근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31사단을 격멸했다. 남대리 부근 전투에서 박 일병은 적을 찾아 선두에서 용감하게 나아가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2월 3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17판-1면-03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ㅊ-03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