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하(朴德河)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80377
  • 전몰일자 : 19520530

공훈사항

박덕하 하사는 1930년 2월 8일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0년 12월 30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고, 제7사단은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어 적의 공격에 대비하던 상황이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영월 일대로 철수했으나,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는 평창군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5월까지 영월-평창-하진부리-인제 축선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5월 하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고, 연대는 6월 초순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을 물리쳤다. 연대는 8, 9월 동안 강원 양구군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와 883고지에서 적과 격전을 치르며 이 고지들을 확보했다. 연대는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제7사단은 9월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육본 직할로 소속이 변경되어 양구 일대에서 부대정비를 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12월 25일 중공군은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왔고, 연대는 28일까지 공방전 끝에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1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연대는 1952년 2월 11일 중공군을 크리스마스고지로 유인하여 타격을 주려 하다가, 오히려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13일까지 공방전을 펼친 끝에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2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이후 휴전회담이 지속 진행되면서 연대는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적진에 대한 위력수색과 매복, 교란작전, 수색정찰 등을 지속했다. 이 하사는 1952년 5월 30일 위력수색작전 중에 적의 기습을 받고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4-ㅌ-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