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하(朴德夏)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6802988
  • 전몰일자 : 19501012

공훈사항

박덕하 이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박 이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초순 제3사단 제22연대에 입대했다.
박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흥해 남쪽의 고지군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혈전을 거듭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9월 5일 새벽 적은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는 3시간여에 걸쳐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어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총반격 태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9월 23일 사단은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박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계속 파죽지세로 나아가 장사동-평해-울진-삼척-강릉(30일)을 적의 큰 저항 없이 탈환하면서,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했다.
10월 1일 서림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수도사단은 제18연대를 선두로 10월 3일 양양을 점령한 후, 10월 4일 간성을 점령했다. 사단장은 연대를 강원도 원통-양구-회양-신고산-안변 방향으로 우회하여 원산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연대는 10월 6일 양구를 점령하고, 계속 진격하여 7일 안변을 공격하여 원산 공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제1군단은 원산을 점령하기 위해 제3사단이 시가지 동쪽 고지군을 공격하고, 수도사단이 시가 서쪽의 여왕산을 탈취하도록 했다. 북한군 동해안방어사령부는 패잔병과 증원부대를 총동원하여 필사적으로 방어에 임했다. 연대는 10일 원산을 공격하여 강력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하고, 11일 시가지에서 저항하는 일부 잔적을 소탕하여 원산을 완전히 확보했다. 박 이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잔적소탕작전을 하다 12일 적의 기습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하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5-ㅇ-05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