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진(박덕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64219
  • 전몰일자 : 19520620

공훈사항

박덕진 일병은 1926년 6월 15일에 경상남도 통영시 용남면에서 출생했다. 박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박 일병은 1951년 11월 19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30연대에 배치되었다.
유엔군과 북한군은 1951년 11월 27일 에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큰 전투 없이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와 전투정찰 위주의 탐색전이 1952년 전반기까지 지속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과 그 북방 38도선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에서 적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제9사단은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281고지(화살머리고지)와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에 배치되어 중공군 제126사단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 무렵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투는 고지 쟁탈전 양상으로 변모해 갔다.
연대는 1952년 1월에 평강 진출로 상에 있는 신회산(343고지)을 공격하여 적의 방어시설들을 파괴하고 철수했다. 4월 5일부로 재창설된 제2군단이 금성 돌출부 지역의 전선에 투입됨에 따라, 전투지경선이 조정되어 사단은 동일부로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이후 연대는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적정파악 및 포로획득을 위한 전투정찰과 적의 소규모 공격 및 침투를 방지하기 위한 수색·매복작전을 지속했다.
연대는 1952년 6월에 대규모의 포로획득과 더불어 북한군의 공격 기도를 분쇄하기 위해, 중공군 1개 연대병력 3,500여 명이 방어하고 있던 사단 정면의 500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박 일병은 1952년 6월 20일 수색작전 중 적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ㅋ-03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