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윤(朴德允)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21379
  • 전몰일자 : 19501017

공훈사항

박덕윤 하사는 경상남도 부산시 남구 남천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선발되어 미 제7사단 제31연대로 배치되었다.
미 제7사단은 당시 일본 요코하마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덕윤 하사는 8월 말에 부산에서 출항하여 일본 요코하마에 위치한 미 제7사단에 합류하였다. 그는 미 제7사단 장병들과 함께 상륙작전을 위한 준비차 승선훈련과 시가지전투 훈련 등을 실시한 후 상륙함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향했다. 드디어 9월 15일에 미 제1해병사단이 월미도-인천으로 상륙하여 상륙교두보를 확보하였다.
박덕윤 하사가 소속된 미 제7사단은 9월 18일에 미 제1해병사단을 후속하여 상륙한 후에 지체없이 서울로 진격했다. 박덕윤 하사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인천 소사 남쪽의 동광산(221고지)-안양 북쪽의 300고지-관악산을 우회하여 과천-우면산 방향으로 진격하여 9월 23일에 신사리 일대에 도착했다.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25일에 서빙고로 한강을 도하한 후에 남산을 탈환했다.
유엔군사령관은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실시함에 있어서 미 제8군이 서부 및 중부지역으로 공격하고, 미 제10군단은 원산으로 상륙작전을 실시토록 했다. 미 제7사단은 계속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원산상륙작전에 참가했다.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10월 6일부터 철로와 차량을 이용하여 부산으로 이동, 부산에서 출항준비를 했다. 그런데 부산 일대에 북한군 패잔병들이 출현하여 후방을 교란하자, 박덕윤 하사가 소속된 제31연대는 소탕작전을 위해 수시로 출동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중대는 10월 17일 야간에 북한군 잔적이 항만을 습격한다는 정보를 접수하고 출동하여 잔적들을 소탕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윤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7판-8면-09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ㅊ-00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