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윤(朴德允)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16

공훈사항

박덕윤 경사는 1921년 6월 8일 경남 고성군 회화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남도경 거제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통영에서 전사했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유격대가 태백산 일대에 계속 침입하자 치안국은 시흥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경찰 간부들을 중심으로 4월 20일 제8·제9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영월과 춘천지역에 배치하는 등 전·후방의 치안확보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6월 10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38도선 접경지역인 경기·강원 2개 도에 비상경비태세 강화명령을 내려 북한의 군사동태를 잘 살피도록 하였다.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거제경찰은 해상으로부터 적의 침입에 대한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전선은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 이동되어 7월 22일 사천-진주-함양-거창-김천-상주를 연하는 선에서 형성되었다. 군경부대는 진주·마산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6사단에 대비하기 위해 경남·전남·전북의 경찰병력 4,000명으로 전투편성을 한 다음, 지휘소를 함안군 군북면에 두고 미 제25사단, 한국 해병대와 합동으로 적과 대치했다.
7월 22일 진주에 투입된 거제경찰은 진주시 칠암동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거점방어, 오열 색출,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8월 7일 고성군 노산리까지 후퇴하여 이곳에서 군부대와 함께 방어진지를 구축하며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8월 15일 미명을 기하여 북한군 제7사단 예하 1개 대대규모 병력이 고성에서부터 통영으로 향했다. 당시 해병대가 통영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거제경찰은 통영의 원문고개 일대에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8월 16일 야간에 거제경찰과 원문고개를 통해 통영으로 진입하고자 하던 북한군 간 전투가 벌어졌다. 박 경사는 적을 격퇴하기 위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윤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ㅁ-05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