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순(朴德淳)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506625
  • 전몰일자 : 19510804

공훈사항

박덕순 하사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던 1950년 8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박덕순 하사가 소속된 사단은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하였고 이어 1월 말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였다. 박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1월 31일부터 미 전차의 지원 하에 2개 대대 병진대형으로 안양 남쪽의 수리산-모락산을 공격하여 개시 5일 만에 치열한 백병전을 치른 끝에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서울 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박 하사가 소속된 사단은 3월 15일 제6중대의 도하를 시작으로 각 대대의 일부 병력만 도하시켜 적정을 탐지하도록 한 다음, 16일 한강을 도하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 전역을 장악하였다. 그 후 서울에서 북상하여 진격하였고 고양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였다.
이후 제1사단은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박 하사와 연대병력을 문산 축선에 투입시켰다. 곡릉천 서쪽의 죽원리와 지영리 일대로 진출한 연대는 오후 5시경 곡릉천을 도하 북동쪽으로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봉일천-삼송리 도로 동쪽의 248고지 일대에서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좌절되었다. 그러나 다시 야간공격을 기도하여 자정 무렵에 목표고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임진강 북쪽에서 강력한 정찰활동으로 군단의 좌측방을 엄호한 사단은 6월 3일 공격 준비를 완료한 후 전곡-연천 도로를 따라 김화를 공격하였다.
7월 10일부터 시작된 판문점에서는 휴전회담이 진행 중이었으나 전투도 계속되고 있었다. 양측은 서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자제하였지만 신경전과 소규모전투는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수색정찰대 운용을 강화하였고, 제한된 규모의 공세적인 전투정찰도 실시하게 되었다.
박덕순 하사는 일부 병력과 정찰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사격전을 전개하며 고군분투하였으나 끝내 방어하지 못하고 1951년 8월 4일 가재동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ㅅ-09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