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수(박덕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30393
  • 전몰일자 : 19510110

공훈사항

박덕수 일병은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박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18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로 선발되어 미 제25사단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은 첩보수집, 포로신문, 편의대 활동 등으로 사단 작전에 기여한 후 10월 하순경 제3사단으로 전속되어 병참중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25일까지 송전반도-영흥-고원-마전리-안변을 연결하는 원산 서북방의 외곽선을 확보 후 지역 내 잔적을 소탕했다.
사단은 10월 29일 북진을 계속하기 위해 함흥에 집결 후 11월 4일 신포로 이동했고, 18일 길주로 이동했다. 사단은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혜산진 일대로 계속 북진했다. 그런데 중공군의 제2차 공세의 일부로 제9병단이 11월 27일부터 장진호 부근의 미 제7사단과 제1해병사단을 포위 공격하면서 전선 상황이 불리해지자 유엔군은 11월 30일 전 부대에 대해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에 사단은 길주 일대로 철수하여 수도사단의 철수를 엄호한 후에 성진항에 집결했다. 사단은 2월 9일 성진항을 출항했고,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 묵호, 부산에 상륙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사단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을 맞아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당하자, 상급부대 명에 따라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보급추진을 하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월 1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2면-1707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ㅌ-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