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수(박덕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22493
  • 전몰일자 : 19501202

공훈사항

박덕수 일병은 1922년 2월 4일에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면 북정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3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마산 지역에 방어지역을 편성하고 있던 미 제25사단으로 배치되었다.
박덕수 일병이 전입했던 10월 중순, 미 제25사단은 전주-논산 일대에 주둔하며 지리산 및 덕유산 일대에 준동하던 북한군 패잔병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적들은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무리를 지어 아군 후방을 교란하고 있었다. 한편 유엔군의 주력은 10월 초에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중순에 평양을 탈취하고, 계속 진격하여 청천강을 건너 압록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공격이 중단되고 청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이에 유엔사에서는 미 제2·제25사단을 전방지역에 투입하기로 했다.
박덕수 일병이 소속된 미 제25사단은 11월 2일에 후방지역 임무를 국군 제3군단에 인계하고, 평강 및 장단지역으로 이동하여 11월 15일부터 미 제9군단에 합류하여 차후작전을 위해 청천강 선으로 북상했다. 사단은 11월 24일에 시작된 유엔군의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에 참가하여 온정리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때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우측에 배치된 국군 제2군단의 공격대형이 먼저 무너졌고, 미 제25사단은 후방차단 위협을 느껴 평양 일대로 철수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정면 및 측후방 공격으로 힘겹게 평양방어선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12월 2일에 방어선이 일부가 돌파되면서 큰 피해를 받았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2면-1707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ㄷ-08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