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산(朴德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43539
  • 전몰일자 : 19510206

공훈사항

박덕산 일병은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8월 중순 부산에 있는 제3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에 선발되어 미 제24사단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인 9월 초, 미 제24사단은 낙동강돌출부 방어진지를 미 제2사단에 인계하고 미 제8군의 예비로서 경산에 집결하고 있었다. 얼마 후 기계-안강-경주 축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위기가 고조되자 미 제8군은 9월 6일에 미 제24사단 주력을 경주에 투입하였다. 사단은 9월 7일 오후 12시 30분에 먼저 투입된 잭슨특수임무부대를 처치특수임무부대로 확장 개편했다. 처치 특수임무부대는 9월 8일 후방을 위협하던 약 1개 연대 규모의 북한군을 운제산(482고지)에서 격퇴하여 위협을 제거했다.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9월 16일부터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작전을 개시했다. 이날 제24사단은 왜관 남쪽에서 낙동강을 도하하여 북한군을 공격했으나, 폭우로 항공 및 포병사격 지원을 받을 수 없어 북한군의 방어진지를 돌파하는 데 실패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가 10월 초순 회복되어 육군병참단에 배치되었다.
국군 부대들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하자 육군병참단도 전방 부대들을 보다 밀접히 지원하기 위해 10월 11일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했다. 그러나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남으로 후퇴하면서 육군병참단을 비롯한 재경 병참부대들은 전방 전투부대들을 밀접히 지원하면서 부산으로 이동했다. 박 일병은 전방 부대들에 대한 보급에 진력함으로써 전투부대들의 전투력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1951년 2월 6일 보급품 수송 중에 제천 일대에서 적 게릴라의 습격을 받고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5-ㄲ-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제2기지사령부 소속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동 부대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이와 유사한 육군병참단으로 조정하여 작성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