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만(朴德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11086
  • 전몰일자 : 19511119

공훈사항

박덕만 하사는 1923년 2월 17일에 경상남도 밀양군 단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11사단 제20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덕만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1월 초순, 제11사단은 호남지역과 지리산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제20연대는 9월 25일에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를 모태로 창설되었고, 10월 초순에 광주지역으로 이동하여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연대는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중대 규모 이상 단위로 활동하던 게릴라들을 격멸했다.
박덕만 하사가 소속된 제11사단은 4월 6일에 호남지역에서 공비소탕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을 맞아 철수를 거듭하다가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후 사단은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향로봉(간성)-건봉산 방향으로 반격하여 6월 10일에는 향로봉-건봉산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전선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11사단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유엔사의 작전지침에 의거 향로봉 북쪽의 884고지를 탈취하기로 하고, 8월 18일부터 제9연대가 공격했다. 제9연대는 8월 25일까지 두 차례 탈취했으나 적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겼다. 이에 박덕만 하사가 소속된 제20연대가 8월 27일부터 공격하여 29일에 884고지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박덕만 하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수도사단이 방어하던 월비산(459고지) 지역을 11월 17일에 인수했으나, 북한군 제9사단이 11월 18일에 공격했다. 사단은 방어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11월 24일까지 수차례 공방전을 펼쳤으나, 결국은 월비산을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그는 분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11월 19일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만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핀-11먄-685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ㅅ-07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