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덕만(朴德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20291
  • 전몰일자 : 19510901

공훈사항

박덕만 일병은 1927년 12월 27일에 경상남도 김해군 대동면에서 출생하였다. 박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박 일병은 1950년 9월 2일에 입대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의거해 제9사단 제2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입대할 당시, 1950년 10월 15일에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및 충남지구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을 실시하였다.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맞아 대략 1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제9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5월 7일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하였다.
중공군은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의 결과로 제3군단이 해체되어 제9사단은 1951년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와이오밍(Wyoming)선(캔자스선 북방 20km 내외의 철의 삼각지대를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1951년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65군 예하 제165사단과의 격전을 벌였고 그 결과로 고대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진지를 지켜내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951년 9월 1일에 끝내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덕만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8-ㄲ-00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