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훈(朴大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704642
  • 전몰일자 : 19500905

공훈사항

박대훈 일등중사는 1929년 7월 26일에 경상북도 영주군 영주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이후에도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1월 24일, 충북 청주의 제7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5월 6일에 춘천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연대 본부를 춘천에 두고 화천-춘천 축선을 담당했다.
박대훈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당시 북한군 침략에 대비해 방어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 전선에서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했으며,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제7연대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를 앞세우고 공격해 왔다. 이에 연대 장병들은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6월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지연시킬 수 있었다.
제7연대는 6월 27일에 춘천에서 철수하여 원주를 거쳐 7월 1일에 충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7월 4일 음성으로 급히 투입되어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후 7월 14일부터 31일까지 이화령과 조령 등 문경 일대와 점촌 –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과 맞서 격전을 벌이며 진출을 지연시켰다.
제6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8월 3일에는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의 낙동강 선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한편 북한군은 8월 5일에 낙동강을 도하 공격하였고, 8월 10일 새벽 3시에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을 도하하여 아군을 공격했다.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신령 북방 고지군에 배치되었다. 8월 말에는 ‘화산 탈환작전’을 했다. 화산은 신녕 일대를 방어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다. 박대훈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8월 29일 오전 신녕에 도착하여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먼저 중간목표인 228고지를 점령하고, 8월 31일에 적정을 고려하여 야간에 최종목표인 화산을 공격했다. 이날 북한군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고 분산되어 철수했다.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해 대규모 공세(일명 9월 공세)를 개시했다. 박대훈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화산–725고지를 잇는 방어진지에서 용감하게 싸워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그러나 북한군의 공격은 계속되었고, 9월 5일에는 공격의 강도가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며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훈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4묘역-7판-1322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ㅇ-00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