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호(朴大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9254
  • 전몰일자 : 19501221

공훈사항

박대호 일병은 경상남도 김해군 주촌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말,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24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대호 일병이 전입 했을 때, 미 제24사단은 미 제8군의 예비로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9월 16일 시작되었고, 의외로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고전하다가 9월 20일에 북한군의 방어선 돌파에 성공하여 김천-영동 방향으로 적들을 추격했다. 그리고 9월 25일에 김천을 탈환하고 영동-옥천을 거쳐 9월 28일에 대전을 탈환함으로써 2개전 대전전투의 패배를 설욕했다. 이후 북진작전 간에는 미 제1군단의 조공으로 10월 14일 야간에 문산 일대에서 임진강을 도하하여 연안-해주-재령 방향으로 공격하여 19일에는 온정을 탈환했다.
박대호 일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10월 20일에 평양에서 미 제1기병사단을 초월하여 숙천-신안주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22일까지 청천강 선을 확보했다. 10월 24일 유엔군의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가 시작될 때, 사단은 청천강을 건너 박천 방향으로 북한군을 추격하여 27일에는 정주까지 진격했다. 이때 인접의 국군 제2군단이 적유령산맥 일대에 은밀히 숨어 있던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무너지자, 사단은 후방이 차단되는 위험을 느끼고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유엔군은 당시 적정 판단에서 “참전한 중공군은 소규모일 것이다”라며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개시했다. 미 제24사단은 선천까지 접적 없이 진출했으나, 인접부대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에 의해 무너짐으로써 후방이 차단될 것을 우려하여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12월 6일에는 평양마저 포기하고 철수하여 12월 13일에는 38도선 상의 의정부-포천 축선의 방어를 담당했다.
박대호 일병은 북진작전 간에 미군 장병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했으며, 그가 소속된 소대는 12월 21일에 방어지역 전방에 대한 수색정찰 활동을 하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0판-8면-20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ㅅ-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