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현(朴大鉉)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35331
  • 전몰일자 : 19520929

공훈사항

박대현 하사는 1931년 4월 1일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38도선 일대에서 피·아간에 전선이 교착된 시점에,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박 하사는 1952년 5월 28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술적으로 유리한 감제고지 확보를 위해 고지쟁탈전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1952년 1월 12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 되어 강원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739고지~949고지~석장리 간의 전선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1951년 11월 27일 휴전회담에서 ‘현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확정’하기로 합의됨에 따라 감제고지 쟁탈전이 더욱 격화되었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주저항선인 739고지 일대를 확보하고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북한강~석장리 간의 진지를 계속 유지하면서 소규모 진지전과 정찰전을 전개했다. 그러다 9월 28일 중공군 제68군 예하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748고지) 및 독수리고지(572고지)에 공격을 가해왔다. 이때 제3사단은 주저항선에 좌우에 제22연대와 제23연대를 배치하고 제18연대를 사단 예비로 편성하고 있었다.
28일 야간에 중공군은 748고지와 572고지를 비롯한 연대의 주저항선 일대에 전례 없이 강력한 포격을 집중하며 대규모 적이 공격해 왔다. 연대는 일시적으로 진지에서 물러났다가 제18연대와 함께 역습을 실시하여 백병전을 펼친 끝에 적을 격퇴하고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박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앞장서서 진지를 지키다 적탄에 맞아 9월 29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현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6148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14묘역-3판-215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ㅁ-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