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하(朴大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9877
  • 전몰일자 : 19500729

공훈사항

박대하 일병은 전라북도 무주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9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대하 일병은 보은-함창 전선에 투입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차량으로 보은-상주 도로로 이동하여 7월 13일 미원 북방에서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연대정면에 집중하고 있는 북한군은 갈령, 화령장, 이화령, 조령, 죽령에서 소백산맥을 신속히 돌파하고 상주와 안동 방향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북한군 제15사단이 괴산에서 부대정비를 마치고 16일 미명 미원 북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부흥리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이 한때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북한군의 진출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고 저지하였으며, 다음날에도 전차 3대와 장갑차 12대로 전력을 증강하여 공격을 재개한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북한군 제2군단의 집요한 공격에 밀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다시 미원 남쪽으로 진지를 전환하였다. 이어 7월 21일 전선 정리계획에 따라 춘양으로 진출하려던 중 화령장의 상황이 확대되자 보은에서 화령장으로 투입되어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박대하 일병이 소속된 제1사단은 7월 22일 작전책임을 인수받은 후 24일까지 적을 저지하다가 상주 북쪽에서 미 제25사단 제24연대가 화령장에 도착하자 다음날 작전지역을 인계하고 상주로 이동하였다. 이후 제1사단은 군단 재편성에 따라 제2군단으로 전환되어 함창으로 전진하였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영강 동쪽으로 북한군을 차단 포위하기 위해 29일 미명부터 즉각 반격에 나서 오정산 일대를 탈환함으로써 적의 퇴로를 위협하였다. 북한군 제1사단과 제13사단은 퇴로 차단의 위협을 받아 일시에 와해 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대하 일병은 1950년 7월 29일 오정산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중 적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0-ㅂ-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