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진(朴大進)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31598
  • 전몰일자 : 19510726

공훈사항

박대진 일병은 1928년 8월 1일 경상남도 거제군 장목면에서 출생하였다. 박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병은 1950년 7월경에 입대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의거해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전입할 무렵, 연대는 1950년 7월 5일 수도사단에 편입되어 7월 6일부터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 방면으로 지연전을 펼쳤다. 제8사단의 뒤를 따라 북한군 제12사단이 계속 공격해오자 연대는 7월 31일부터 8월 1일까지 안동전투에 투입되어 제8사단의 철수를 엄호하며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쳤다. 제9사단은 강원 정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였다.
이후 사단은 1951년 3월 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가 북상하던 북한군 제10사단이 두타산(1,361고지) 북쪽의 삼화리를 경유해 이동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고 이에 따라 제9사단은 송계리에 투입되었다.
송계리에 투입된 제9사단은 북한군을 차단하기 위해 남쪽과 동남쪽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적들은 포위망이 압축되자 밤이 되어 아군이 공격을 잠시 중지한 틈을 이용하여 포위망을 뚫고 북쪽의 목계리로 도주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제9사단은 경미한 적의 저항을 받으며 4월 중순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후 1951년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5월 7일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현리전투의 결과로 미 제8군의 반격계획에 따라 제9사단은 와이오밍(Wyoming)선(캔자스선 북방 20km 내외의 철의 삼각지대를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향로봉-지장봉을 연하는 산악을 따라 고대산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일병은 전투에 앞장서서 돌격을 감행하다 적탄에 맞아 1951년 7월 26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8-ㅌ-08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