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재(朴大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802041
  • 전몰일자 : 19510503

공훈사항

박대재 일등중사는 1928년 9월 24일에 경기도 개풍군 토성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50년 1월경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제17연대로 현지 입대했다. 연대는 건군 초기의 혼란을 안정시키는 작전에 참전하다가, 3월 1일부로 옹진지역 전투에 투입되어 작전을 수행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7연대는 6월 26일 인천으로 철수했다.
박대재 일등중사는 제5사단이 10월 8일에 대구에서 재창설되면서 제27연대로 재배치되었다. 제5사단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할 때인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지역 후방지역작전에 투입되면서 적 게릴라들을 소탕했고, 이후 가평, 청평, 춘천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완수했다.
북진을 계속하던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군의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다. 이에 따라 제5사단은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춘천 지역에서 평양-춘천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3일부터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어 방어편성을 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2월 9일 섬강 남쪽으로 진출하면서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횡성 일대 포동리를 점령했다. 이어서 사단은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 후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개시했으며, 점령하여야 할 원주-평창선보다 남쪽으로 계속 철수하여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3월 3일에 美 제10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3월 7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지역의 태기산(1,261고지)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3월 14일에는 적의 최후 거점인 태기산을 점령하고, 다음날 북쪽의 운무산-흥정산을 잇는 선에서 최종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 후 사단은 4월 10일 공격을 개시하여 19일에 목표인 인제를 점령하고, 그 북쪽 봉화봉과 월하리 일대로 진출하면서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제27연대는 5월 1일부터 사단 책임지역 동쪽의 위력수색을 전개했다. 박대재 일등중사는 5월 3일 인제 지역에서 분대원과 함께 책임지역 위력수색을 하다가 적과 조우하여 교전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재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2-ㅇ-08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