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원(朴大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599
  • 전몰일자 : 19510207

공훈사항

박대원 일병은 충청북도 제천군 봉양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박대원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월 두포리-금곡리-무건리 선에 배치되어 중공군의 돌파구 확대를 저지하였다. 그들은 노고산 일대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중공군의 돌파구 확대를 저지하고자 새벽까지 고군분투하였으나 역부족이었으므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고양리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1월 31일부터 미 전차의 지원하에 2개 대대 병진대형으로 안양 남쪽의 수리산-모락산을 공격하여 개시 5일 만에 치열한 백병전을 치른 끝에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박대원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신정 공세 이후 계속된 철수 작전으로 사기가 저하되고 지연전을 펼치며 고갈된 피해를 회복하고 부대정비를 거쳐 2월에 총공세로 전환하였다. 연대 장병들은 한강 남쪽으로 진출한 이후 한 달여 동안 서울을 목전에 두고 한강철교-영등포에 이르는 여의도에 배치되어 경계와 잔적 소탕 작전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울 탈환 작전을 대비하여 소대-분대 규모의 장찰대를 강북으로 파견 적정을 탐색하도록 하였다. 박 일병은 정찰대에 합류하여 정찰 도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소총 사격을 가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대원 일병은 1951년 2월 7일 수원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원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3-ㄷ-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