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운(朴大雲)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49768
  • 전몰일자 : 19510517

공훈사항

박대운 일병은 1923년 6월 16일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現 동작구) 신대방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압록강 및 두만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자 1950년 12월 30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대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평택-삼척을 잇는 37도선 상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후 총반격을 개시하여 서울을 재탈환하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방어 배치를 전환하여 영주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 부대들을 격멸했다.
이어서 사단은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하여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철수를 개시하여 제천 북쪽지역으로 이동했다. 3월 6일에 봉복산-태기산을 목표로 공격하여 적의 강력한 거점인 둔방내리 남쪽의 고지들을 확보했다. 제35연대는 3월 14일에 적의 최후 거점인 태기산을 점령하고 다음날 그 북쪽의 운무산-흥정산을 잇는 선으로 진출하여 진지를 편성했다.
그 후 사단은 4월 7일에 다시 반격작전을 실시하여 소양강을 도하하는데 성공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4월 17일에 인제를 점령하고, 4월 19일에 원통 북쪽의 481고지와 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사단은 4월 22일 자정부터 북한군의 집중공격(일명 4월 공세)을 받고 4월 24일에 인제를 적에게 다시 빼앗겼으나 다음날 재탈환했다.
제5사단은 5월 7일에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한석산 좌측에서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홍천-인제 도로를 확보했다. 박대운 일병이 소속된 제35연대는 사단예비로서 주공연대를 후속하다가 부평리-청구리 일대의 목표를 공격하여 탈취했다. 그러나 사단은 진지강화 및 재편성 중에 5월 16일부터 19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일명 5월 공세)을 받았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격전을 치르면서 포위망을 탈출하여 5월 20일 홍천 부근 풍암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와 같은 중공군 5월 공세로 박대운 일병은 5월 17일부평리 일대에서 분대원과 함께 적과 교전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운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6560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2-ㄲ-07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