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용(朴大鎔)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1902533
  • 전몰일자 : 19501122

공훈사항

박대용 상병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정치 및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7월 중순경,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제9연대로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9연대는 포천 서북쪽 추동리-사직리 간 26㎞의 38도선 책임지역을 담당하면서, 제2대대에게 38도선 경비임무를 담당하도록 했고, 연대본부와 제1, 3대대는 의정부 북방 금오리에 주둔하면서 방어준비를 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공격을 했을 때, 연대는 신속히 천주산(434고지)-가랑산(350고지) 간의 주저항선 진지를 점령했으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을 당해낼 수가 없어 오후 4시경에 태릉으로 철수하여 불암산 동남쪽 210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한강교가 폭파되자 6월 28일 아침에 망우리고개-용마산을 거쳐 광나루로 철수했다. 이후 7월 5일 평택에서 부대 재편성 과정에서 제9연대는 해체되고, 부대원들은 수도사단 제1연대에 편입되었다.
박대용 상병 소속된 제1연대는 7월 6일 진천으로 이동하여 14일까지 북한 제2사단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후 연대는 7월 28일 안동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8사단의 철수를 엄호했다. 그리고 연대는 8월 13일에 안강 지역으로 투입되어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이후 9월 2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맞이하여 9월 4일 포항 일대 형산강 이남의 호명리 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그 후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따라 아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진행했으며, 북으로 도주하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이 산간지역으로 숨어들어 아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있었다. 이에 영남지역 후방지역작전을 위해 제5사단은 10월 8일에 대구에서 제27, 35, 36연대 등 3개 연대와 수색대, 공병대, 통신대를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이때 박대용 상병은 제5사단 수색대로 재배치되었다.
재창설 후 제5사단은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면서 아군 6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적 936명을 사살하고 126명을 생포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면서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박대용 상병은 이 후방지역작전 시 1950년 11월 22일 제36연대 작전지역인 김천 일대에서 소대원과 함께 매복 중인 적과 교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용 상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1판-1면-15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1-ㄲ-01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