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식(朴大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1525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박대식 중위는 서울특별시 중구 동자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박 중위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중위는 1950년 5월경 종합행정학교에서 군사훈련 후 임관하여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박 중위가 소속된 제1연대는 동두천 축선의 38도선 방어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후 연대는 7월 5일 수도사단에 편입되어 1950년 7월 6일부터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 방면으로 지연전을 펼쳤다. 제8사단의 뒤를 따라 북한군 제12사단이 계속 공격해오자, 연대는 7월 31일부터 8월 1일까지 안동전투에 투입되어 제8사단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했다.
이후 동년 10월 25일 제9사단이 창설될 때 연대의 제2대대가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2대대 소속이었던 박 중위는 제9사단 직할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가 북상하던 북한군 제10사단이 두타산(1,361고지) 북쪽의 삼화리를 경유해 이동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고 제9사단은 적의 저항을 받으며 4월 중순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사단은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1951년 5월 7일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중공군은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1951년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하지만 박 중위는 속사리 부근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1951년 5월 18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식 중위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8-ㅊ-03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