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식(박대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327

공훈사항

박대식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12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고,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 중인 상황이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사단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을 맞아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당하자,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이 종심 깊게 침투하여 경상북도 일대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이에 사단은 봉화군 춘양으로 이동하여 1월 14일부터 22일까지 영월 동남쪽 남대리 부근에서 침투한 적 제31사단을 포위 격멸했다. 이로써 유엔군은 중공군 제3차 공세에 호응하여 원주-영월을 거쳐 경상도 내륙으로 침투하려던 북한군 제2전선부대를 차단하여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
2월 5일 미 제10군단이 중동부전선의 요충지인 홍천을 점령하기 위해 라운드업 작전을 전개하여 반격을 했다. 미 제10군단의 공격이 교착상태에 빠져들자, 미 제10군단장은 2월 10일 국군 제3군단 예비였던 제3사단을 횡성 동북방으로 투입했으나, 공격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력을 집중하여 2월 공세를 감행했다. 횡성 동북방에서 공격하던 사단은 중공군 제197사단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전진을 저지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Operation Ripper)을 전개했다. 이때 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공격을 전개했고, 연대는 평창군 하진부리, 유천리 일대를 점령하고 계속 공격하여 3월 27일 경강국도 상의 강원 인제군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 진격전에서 박 일병은 적정을 탐색하며 앞장서서 공격해 나가다가 3월 27일 적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13-ㅍ-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