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복(朴大福)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3700075
  • 전몰일자 : 19500709

공훈사항

박대복 하사는 충청북도 제천군 수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7월 20일, 인천시 부평의 육군군의학교로 입대하여 소정의 군사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의무병이 되었고, 제6사단 직할부대인 의무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의무중대는 화천-춘천 축선을 담당한 제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제7연대 장병들은 북한군의 침공에 대비한 방어준비에 집중했다. 장병들은 방어진지에 2∼3개소의 통나무로 만든 유개호를 마련하고 호(壕)간에는 철조망을 설치하고 그 중간에는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또한 방어에 유리한 소양강변과 그 북쪽의 춘천 분지를 감제하는 164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박대복 하사가 소속된 의무중대는 방어준비나 전술훈련간 부상을 입은 장병들에 대해 치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면적인 남침을 감행했고, 이에 제7연대는 곧바로 방어지역에 투입되었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쳐들어왔다. 제7연대 장병들은 대전차 특공조를 구성하여 적 자주포를 공격하여 일부 성공을 달성했다. 그리고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6월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저지시켰다.
제7연대는 6월 27일에 전투력의 열세로 더는 버티지 못하고 춘천에서 철수하여 원창고개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6월 30일까지 적의 진출을 저지하다가 다시 횡성을 거쳐 원주로 철수했고, 7월 1일에 육본 명에 의거 충주로 이동하였다가 7월 4일에 음성으로 이동하여 이곳에서 7월 9일까지 북한군 제15사단의 공격을 저지시켰다. 박대복 하사가 소속된 의무중대는 전쟁 발발로부터 이날까지 수많은 사상자를 후송하거나 치료하는 임무를 수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 이날 그는 부상병을 후송하던 중 적 침투부대의 공격을 받고 안타깝게도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복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5면-00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ㅂ-03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