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만(박대만)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505173
  • 전몰일자 : 19500627

공훈사항

박대만 하사는 부산시 중구 부평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3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1사단은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에 이르는 광정면의 38도선 경계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은 제12연대를 좌측 개성 일대에, 제13연대를 우측 임진강 일대에 배치해 38도선 경계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제11연대는 사단의 예비대로 수색에 배치해 운용하고 있었다.
박대만 하사는 연대 장병들과 함께 개성 일대의 방어력 증강을 위한 진지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북한군의 도발이 수시로 이어지면서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박 하사는 즉각 방어 전투에 투입되었다. T-34 전차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한 북한군은 그날 아침 개성을 점령하고 임진강 방향으로 공격을 확대하였다. 국군의 38도선 경계진지를 돌파한 북한군은 그 공격 기세를 몰아 남진을 계속하여 임진강 철교와 도섭이 가능한 가여울(적성 북쪽)로 진출 임진강 도하를 위한 교두보 확보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임진강 도하 작전에 참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으나 T-34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 한 후 6월 27일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연대 일부에서는 대전차 특공대를 편성하여 육탄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이 대위와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부대 장병들은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하였으며 북한군의 문산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다.
박 하사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였으나 끝내 진지를 지켜내지 못하고 박대만 하사는 1950년 6월 27일 문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만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110-ㄱ-02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