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덕(朴大德)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26897
  • 전몰일자 : 19510227

공훈사항

박대덕 하사는 1922년 6월 18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16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2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대덕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중순, 미 제2사단은 강경, 전주 일대에 주둔하며 덕유산 및 지리산 등으로 숨어 들어간 잔적을 소탕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11월 2일에 국군 제11사단에 인계하고, 북상하여 11월 15일에 개천 및 군우리 지역으로 이동하여 차후 공격준비를 했다. 얼마 후 유엔군은 적정을 모른 채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시작하여 ‘희천’을 목표로 공격했다. 이번에도 중공군 제40군단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어 11월 27일에 철수를 시작했다.
박대덕 하사가 소속된 미 제2사단은 11월 29일에 군우리에서 철수하여 협곡지대인 일명 '태형의 계곡'을 통과하던 중 중공군 제42군단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부대가 와해 상태에 이럴 정도로 큰 피해를 받고 12월 1일에 순천을 거쳐 평양에 도착하였다. 이후 12월 중순에 영등포에 집결하여 부대 정비를 실시한 후 충주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8군의 예비임무를 수행했다.
중공군이 12월 31일 야간에 총공세를 실시하여 유엔군이 평택-삼척을 잇는 선으로 철수할 때, 미 제2사단은 프랑스 및 네덜란드 대대를 배속받아 원주 동남쪽 고지군에 투입되어 1951년 1월 6일부터 12일까지 고수함으로써 차후 유엔군의 반격 여건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미 제2사단은 2월 1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맞아 지평리전투에서 제23연대와 프랑스대대가 주변 고지군을 활용한 전면방어로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이에 중공군은 지평리와 원주 일대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고 물러서자 유엔군은 2월 21일부터 반격을 개시했다.
미 제2사단은 원주-횡성-홍천-춘천 방향으로 공격하였다. 그동안 도망만 하던 북한군은 춘천 일대부터는 어느 정도 조직을 정비하여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는 2월 27일 춘천 일대 전투에서 저항하는 북한군을 제압하였으나, 이날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덕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90-ㅇ-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