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근(朴大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4173
  • 전몰일자 : 19510405

공훈사항

박대근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1차 공세를 받고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을 때인 1950년 11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6사단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박대근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2월 중순, 제6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진지를 보강하고 있었다. 중공군은 예상대로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감행하여 서울을 점령하고자 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을 맞아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최대한 타격을 가했으나,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적들이 사단의 후방으로 침투하여 동두천 부근을 공격하면서 전세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이에 사단은 서울 창동으로 철수했다가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미 제8군사령관은 중공군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각 군단에 위력수색작전을 실시하라고 명령했다. 미 제9군단에서는 미 제1기병사단 수색부대가 1월 15∼22일까지 위력수색작전을 실시하여 수원-여주 이남지역에는 중공군의 소규모 부대만이 배치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작전으로 유엔군은 중공군의 방어선이 수원-이천을 연하는 선이며, 화력지원과 보급 수준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과 중공군이 가까운 시일 내에 대규모의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제6사단은 2월 초에 위력수색작전의 결과에 따라 방어배치를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조정했다. 이후 사단은 2월 12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시에 방어진지를 사수함으로써 돌파구 확장을 방지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홍천강까지 진출했다. 이후 사단은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까지 진출했다. 이 시기에 박대근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고,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수색소대는 4월 5일에 적진에서 정보를 수집하던 중 적에게 발각되어 치열한 전투로 적으로부터 이탈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3-ㅂ-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