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균(朴大均)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위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31

공훈사항

박대균 경위는 1919년 6월 9일 전남 목포시 북교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6년 3월 2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전남도경 목포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목포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경위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전남도경은 비상경비체제로 전환하고 도내 관할 경찰관서로 하여금 전투태세에 돌입하도록 했다. 목포경찰은 무안-목포, 목포-영암을 잇는 주요 도로 경비, 피난민 이동·통제 구호, 주요 시설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3일 북한군이 광주로 진격하자 아군 군경부대는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후퇴했으며, 목포경찰은 장흥-순천을 거쳐 함안으로 이동했다. 비상경비총사령부는 7월 31일 진주에서 경남경찰, 전남·전북경찰 혼성병력 4천여 명으로 전투부대를 재편성했고, 경찰부대는 미 제25사단 및 한국 해병대와 합동작전을 전개했다. 8월부터 9월까지 박 경위가 소속된 경찰부대는 고성·창원·함안·진동에서 북한군 제6·7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하면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전선이 북상하면서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목포경찰은 10월 초 목포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 오열 색출, 주요시설 경비, 잔적소탕작전을 수행했다.
12월 31일 목포에 공비들이 출현하여 민간인을 학살하고 가축과 식량을 약탈하는 일이 발생했다. 박 경위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균 경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ㅋ-02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