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대관(朴大館)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902859
  • 전몰일자 : 19500825

공훈사항

박대관 하사는 경기도 옹진군 동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6월 중순, 충남 온양의 제18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연대는 서울로 이동했고, 9월 5일부터 옹진지구 전투에 투입되어 은파산·까치산 전투에서 적의 도발을 격퇴했다. 당시 그는 옹진반도에서 함께 전투에 참가한 제2연대로 전속되었다.
박대관 하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동년 11월 15일에 서울 용산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연대는 1950년 6월 12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했고, 이곳에서 제8연대로부터 홍천 북방의 42km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지형도 잘 모르고 방어준비도 미흡한 상황에서 북한군의 전면적인 공격을 받았고, 이곳에서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반격하는 등 공세적인 전투로 홍천 북방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제2연대는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고, 7월 7일 야간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문경으로 철수했다. 제6사단은 조령(19연대)과 이화령(2연대) 일대에서 북한군 제1사단과 이를 증원하고 있던 북한군 제13사단의 공격을 저지했다. 사단은 7월 16일에 문경에서 철수하여 문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 축선에서 7월 말까지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제6사단은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의 용기동으로 이동하여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고지군을 점령했다. 이곳에서 사단 장병들은 8월 12일 밤 10시를 기해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철수하여 위천 북쪽 1∼3㎞ 지점에서 국통산∼청노동을 잇는 고지군을 점령했다. 이는 의성∼우보∼신녕 축선의 방어를 위한 조치이며, 더 물러설 수 없는 방어선이었다. 북한군은 8월 12일부터 전면적인 대공세(일명 ‘8월 공세’)를 실시했다.
박대관 하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8월 18일 새벽 3시 무렵 적의 공격을 받고 국통산과 324고지, 169고지 일대에서 13시간 동안 치열한 격전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했으나, 이후 8월 25일에 적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연대의 주저항선이 붕괴되는 위기에 처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대관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14묘역-1판-249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ㄹ-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