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달출(朴達出)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31326
  • 전몰일자 : 19500915

공훈사항

박달출 상병은 경상북도 경주군 어은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6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달출 상병은 음성 전투에 투입되었다. 박 상병이 소속된 사단 병력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 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 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9일 다시 무극리-음성, 신양리-음성 양측방 도로 접근로와 중앙 산간 접근로의 3개 방향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새벽 무렵 북한군은 음성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2개 연대병력을 각각 8대의 장갑차의 지원하에 연대 정면으로 공격하였으나 박 상병과 연대병력의 집중적인 저지 사격과 역습에 의해 다시 저지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무렵 북한군이 공격을 재개하여 돌파를 기도함으로써 연대는 점차 위험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후 연대는 10일 낮부터 철수를 단행하여 괴산 북쪽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점령하게 되었다.
박달출 상병과 장병들은 8월 초부터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큰 수훈을 세웠다. 이후 9월 4일 북한군 제3사단이 왜관-다부동 도로 남쪽 464고지로 침투하고 있었으며, 좌측방 왜관도 무인지경이 되고 우측방 에서는 북한군 제13사단이 다부동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가산으로 진출하려던 박 상병과 사단 병력은 다음날 5일까지 북한군 제1사단 1개 대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철수하고 말았다.
박 상병과 사단 병력은 다부동 일대의 정해진 목표를 향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고, 연일 반복되는 공방전에서 매일 평균 600여명의 손실이 발생하여 병력이 날로 감소하였다. 박 상병과 사단 병력은 가산을 탈환하고자 9월 중순까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방어선을 지켜냈다. 박달출 상병은 1950년 9월 15일 적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달출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2판-3면-03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ㅇ-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