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달주(朴達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9035
  • 전몰일자 : 19501128

공훈사항

박달주 일병은 1933년 1월 5일에 강원도 춘성군 동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15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1기병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달주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중순, 미 제1기병사단은 왜관-현풍 간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하여 북한군 제3·제10·제15사단의 대구 방향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후방이 차단된 것을 모르고 낙동강 선에서 방어로 전환하여 강력히 저항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로 전 전선에서 반격을 실시하여 인천상륙작전부대와 연결하여 지대 내 북한군을 격멸하고자 했다. 박달주 일병은 미 제1기병사단 장병들과 함께 반격작전에 참가했다. 한편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것을 아직 모르고 낙동강 선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완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9월 20일부터 북한군은 진지를 이탈하여 도망가기 시작했고, 사단은 도망가는 적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는 낙동리에서 강을 건너 상주-청주-천안 방향으로 추격하여 26일에 오산 북방에서 인천상륙작전 부대인 미 제7사단 장병들과 합류했다.
박달주 일병이 소속된 미 제1기병사단은 10월 8일에 임진강을 도하하여 개성-금천-사리원-평양 방향으로 추격하여 10월 19일에 평양을 점령했다. 이후 사단은 미 제8군의 예비로서 평양에 머무르며 부대정비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10월 24일에 시작된 유엔군의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시에 국군 제1사단이 운산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인 10월 26일에 온정리로 투입되어 국군 제1사단의 철수로를 확보하여 위기를 해소했다.
박달주 일병이 소속된 미 제1기병사단은 11월 24일에 유엔군의 2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에 참가했으나, 이때에도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되어 또 철수하여 평양방어선을 형성했다. 그는 11월 28일 평양전투에서 미군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달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90-ㄹ-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