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달식(朴達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1023
  • 전몰일자 : 19501030

공훈사항

박달식 일병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영천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2사단 제3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달식 일병이 부대에 전입 했을 때, 미 제2사단은 격렬했던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고 총반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들은 큰 피해를 받고 철수한 후에 더는 공세행동을 보이지 않고 방어로 전환했다. 사단은 9월 16일부터 시작된 총반격작전에 참가했다. 낙동강 선에 배치된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것을 모르고 이곳에서 강렬하게 저항했다. 사단은 9월 18일에 강력한 항공 및 포병화력 지원 하에 낙동강을 도하하여 북한군을 추격했다. 9월 24일에는 협천을 탈환하고, 계속해서 거창-전주-논산을 거쳐 9월 30일에 강경을 탈환했다. 한편 미 제8군은 10월 초순에 38도선을 돌파하고, 계속된 북진으로 10월 19일에는 평양을 탈환했다. 유엔군은 부대정비를 한 후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하였으나, 적유령산맥 일대에 은폐해 있던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중공군의 1차 공세)으로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박달식 일병이 소속된 미 제2사단은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덕유산 및 지리산 일대로 숨어 들어간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10월 30일에 공비소탕작전을 나갔다가 소대 규모의 적을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달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7판-7면–03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ㅍ-00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