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달수(朴達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20132
  • 전몰일자 : 19501006

공훈사항

박달수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초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분류되어 미 제25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달수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초순, 미 제25사단은 마산 서부지역 일대에서 방어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가 부대로 전입하기 직전인 8월 중순에 미 제25사단은 킨(Kean) 특수임무부대(제35연대, 제5연대, 미 해병 제5연대)를 편성하여 마산 정면의 북한군 제6사단을 궤멸시키고, 진주 고개-사천 선까지 진출하여 부산교두보를 안정시키기 위해 공격작전을 펼쳤다. 킨 특수임무부대는 8월 7일 공격작전을 개시하여 진주 고개까지 진출했으나, 북한군들이 산악지대에 은폐해 있다가 아군부대에 후방차단 및 기습공격을 가함에 따라 8월 12일에는 진동리-남지 선으로 후퇴했다.
킨 특수임무부대는 8월 16일에 해체되고 제5해병 여단은 제8군사령부의 예비로 전환되었다. 이후 미 제25사단 장병들은 마산 서부지역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의 진출을 저지하는 방어작전만 수행했다.
박달수 일병이 소속된 미 제25사단은 9월 16일부터 미 제8군의 총반격작전에 참가했다. 북한군들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완전히 차단된 것을 모르고 서북산 등 험준한 산악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강력히 저항했다. 사단은 강력한 항공 및 포병화력 지원 하에 9월 17∼18일 양일간 맹공을 가하였음에도, 적들은 19일까지 저항하다가 이날 야간에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 제25사단은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9월 25일에는 진주를 탈환하고 함양 방향으로 추격했다. 이후 남원-전주를 거쳐 9월 29일에 강경을 탈환했다. 이후 강경-논산-이리 일대에서 미처 도망가지 못한 잔적들을 발견하여 소탕작전으로 격멸했다. 그리고 미 제25사단은 미 제8군의 북진작전 계획에 의거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후방지역에서 적 게릴라를 소탕하는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박달수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10월 6일에 전주 일대에서 게릴라로 변한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나갔다가 중대 규모의 적을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달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1판-1면-21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9-ㄷ-09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