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달수(박달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07

공훈사항

박달수 일병은 1918년 1월 27일에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교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16일,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25사단에서 배치되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감행할 때 서울에서 재창설된 제2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로 전속되었다.
당시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었다. 이때 제17연대를 예속시키고, 이어 11월 11일과 13일에 제31, 제32연대를 신편하여 예속시켰다. 재창설 직후 사단은 지휘소를 서울에서 가평으로 이동하고, 제17연대는 철원, 제32연대는 의정부, 배속된 제5사단 제35연대는 구화리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1연대는 제5사단에 배속되어 홍천 일대에서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박달수 일병이 소속된 사단 수색대는 후방지역작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당시 포천, 평강, 구화리 일대에서 병참선 차단 등 후방지역을 교란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들은 중공군 공세에 호응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교란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하고 북진 작전을 감행할 때에 미처 도망가지 못한 자들로 일반적인 공비수준을 넘어서 정규부대처럼 지휘체계를 유지하고 소대부터 대대급까지 활동했다.
박달수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12월 7일에 작전지역 내에서 수색작전 중 북한군 패잔병 1개 소대 규모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달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11-ㅌ-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