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희(朴魯嬉)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24

공훈사항

박노희 경사는 1930년 5월 14일 전남 완도군 군외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8년 6월 4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전남도경 동부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함평에서 전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동부경찰은 광주-담양, 광주-순창, 광주-화순을 잇는 주보급로 경비,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경찰국은 각 서(署)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전북경찰국에 배속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전남전투경찰부대를 편성하였으며, 동부경찰서 병력도 전투경찰로 재편되었다.
7월 23일 광주에 적 보병 500-600명이 야포 3문과 함께 진입하였으며 1개 연대규모가 그들을 후속하고 있었다. 이에 동부경찰을 포함한 전남 서남부지역 경찰은 화순 남쪽 산악지대에 저지진지를 구축하고 도로를 파괴하는 등 적의 진출에 대한 거부작전을 전개했다.
비상경비총사령부는 7월 31일 진주에서 경남경찰, 전남·전북경찰 혼성병력 4천여 명으로 전투부대를 재편성했고, 경찰부대는 미 제25사단 및 한국 해병대와 합동작전을 전개했다. 8월부터 9월까지 동부경찰은 경찰부대에 편성되어 고성·창원·함안·진동에서 북한군 제6·7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하면서 낙동강방어선 고수에 크게 기여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전선이 북상하면서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동부경찰서는 10월 3일 동부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 주요 시설 경비, 오열 색출,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12월 24일 함평에서 공비들이 출현하여 민간인을 학살하고, 가축과 식량을 약탈하는 일이 발생하여 박 경사가 포함된 경찰부대가 현장에 출동했다. 이날 박 경사는 공비들을 격멸하기 위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희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ㅈ-07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