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호(朴魯浩)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위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10

공훈사항

박노호 경위는 1924년 1월 3일 경남 양산군 원동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남도경 밀양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울산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주공부대는 7월 3일 한강을 도하여 경부가도를 따라 남진했다. 이 무렵 경남 서부지역과 호남지역에는 2-10명의 소규모 공비들이 출몰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와 횟수가 증가했다. 울산경찰은 오열 색출, 정보수집, 주요 보급로·시설 경비, 철도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해양경비를 실시했다.
7월 6일부터 박 경위가 포함된 720명의 경남·경북경찰이 부산-김천 간 철도경비 임무를 수행했으며, 7월 31일부터는 진주에서 북한군 제6사단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다. 전북경찰, 전남경찰, 그리고 박 경위가 소속된 경남경찰은 혼성병력 4,000명으로 전투편성을 한 다음 지휘소를 함안군 군북면에 두고 미군 제25사단 및 한국 해병대와 합동작전으로 제6사단과 대처했다.
경남경찰은 8월 12일 북한군이 통영으로 남진하자 마산에서 해상이동으로 통영에 상륙하여 원문고개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8월 13일 적의 선발대가 고성에 진입하자 경남경찰은 적을 격퇴하여 고성을 탈환했으나 곧바로 적의 증원 병력에 의해 통영으로 철수했다가 다시 진동리로 철수했다.
8월 하순 경찰부대는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전열을 정비했다. 진동리지구에서는 경남경찰, 전남경찰, 전북경찰이 투입되어 미 제25사단의 방어진을 보강했다. 9월 1일 북한군이 마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자 미 제25사단과 경찰부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마산과 함안에서 적을 격퇴하는데 성공했다.
박 경위는 이 작전이 끝난 후 울산으로 복귀하여 치안유지, 피난민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1950년 12월 10일 야간에 울산경찰서가 수 명의 공비들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았다. 박 경위는 적을 격퇴하기 위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공비가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호 경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ㅂ-06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