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춘(朴魯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201251
  • 전몰일자 : 19500801

공훈사항

박노춘 일등중사는 1925년 11월 28일에 충청남도 공주군 반포면에서 출생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7년 6월 24일, 그는 충남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2연대는 1948년 12월 28일부터 1949년 5월 17일까지 제주도 4·3사건 진압작전에 투입되었고, 동년 8월 13일부터 11월 15일까지 옹진반도로 투입되어 북한군의 도발을 응징했다. 그리고 1950년 6월 12일에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하여 제8연대로부터 홍천 북방의 42km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제2연대 장병들이 제8연대로부터 진지를 넘겨받았을 때, 진지에는 철조망이나 대인지뢰가 설치되지 않았고, 새로 구축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연대는 전쟁 발발 직전에 남침을 예견하는 북한군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어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통제하면서 고도의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전면 공격을 받았다.
제2연대 장병들은 경계지역전투, 주저항선 전투(어론리, 자은리, 철정리), 최후저항선전투(철정리, 한계리, 성산리)에서 적 자주포를 파괴하기 위해 57mm 대전차포를 운용하고, 대전차포가 없으면 특공조를 운용했다. 또한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반격하는 등 공세적인 전투로 홍천 북방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박노춘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7월 5일에 남한강 연안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7월 7일 야간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문경 일대로 철수했다. 제6사단은 7월 12일에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하는 문경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북한군 제1사단과 이를 증원하고 있던 북한군 제13사단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박노춘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7월 16일에 문경에서 영강으로 철수하여 하천선 방어에 돌입했다. 이후 문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를 치렸다. 북한군은 7월 23일부터 아군 방어지역의 돌파하고자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에 제2연대 장병들은 8월 1일에 제19연대 엄호를 받으며 낙동강방어선으로 이동하여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고지군을 점령했다.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항상 진두지휘하며 용감하게 싸웠으며, 8월 1일에 용기동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받고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춘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8011국)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ㅅ-08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