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철(박노철)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17311
  • 전몰일자 : 19500719

공훈사항


박노철 중위는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소백산맥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섰다. 그는 예비역이었으나, 1950년 7월 16일 예현 제7차로 현역 중위로 임관하여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이 워낙 급박하였기에 박 중위는 곧바로 영덕 북방 일대의 고지전투에 투입되었다. 동해안 지역에 투입된 북한군은 제5사단(제10·11·12연대)과 유격부대인 제766부대였다. 북한군 제5사단은 7월 12일 평해를 점령한 후 14일부터 제10연대를 진보 방면으로 우회시키고, 제11연대와 제12연대를 영덕 방면으로 남진시켰다. 북한군 제5사단의 임무는 중동부지역을 담당한 북한군 제2군단의 진출에 앞서 신속히 포항을 장악함으로써 부산 공략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동해안 지역 방어를 담당하게 된 국군 제3사단은 제22연대를 서울 방면으로 출동시키고 제23연대만으로 7월 1일부터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7월 13일 제23연대는 영해에서 철수하여 영덕 북쪽에 새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이 선에서 제22연대가 복귀할 때까지 영덕을 방어하고자 했다. 포항에서 약 45km 북방에 위치한 영덕은 지형 상으로 북쪽에 활인산과 237고지로 연결되는 횡격실 능선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였다. 또 그 남쪽에는 북에서 남으로 흘러 강구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오십천이 있어 방어에 매우 유리하였다. 더욱이 강구와 포항 사이에는 사단 규모가 방어진지를 편성할만한 지형이 없었기에 영덕은 포항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7월 14일부터 북한군 제11·12연대가 7번 도로를 따라 영덕과 포항을 목표로 본격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영덕 북방의 고지군에 배치된 제23연대는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방어진지가 돌파되기 시작하자 명령에 따라 축차 방어진지를 점령하며 적의 남진을 지연했다. 연대는 철수 시에 영해-영덕 간 교량 및 터널과 도로를 파괴하였고, 유엔군 공군과 해군이 북한군의 집결지와 부대를 타격하여 적의 진출을 지연했다.
북한군 제5사단은 큰 손실을 입었음에도 계속해서 공격을 감행했다. 연대 장병들은 필사적으로 적을 저지하려 했지만,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7월 19일 영덕을 내주고 그 남방의 181고지-207고지 능선으로 철수했다. 일련의 전투에서 박 중위는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7월 19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철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2판-2면-67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ㅋ-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