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창(朴魯昶)

  • 군별 : 육군
  • 계급 : 상사
  • 군번 : 2501197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박노창 상사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조국은 분단되어 있었고, 정부 수립 준비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1948년 6월 8일, 충남 온양의 제13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49년 1월 10일에 경기도 수색으로 이동했다가 동년 6월 1일에 문산으로 이동하여 개성 우측지역의 38도선 경비임무를 담당했다.
제13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아 임진강과 봉일천 선에서 저지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6월 28일 야간에 행주와 이산포로 한강을 건너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부대정비를 거친 후 7월 8일 음성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적의 공격을 12일까지 지연시키고, 진천-보은-상주 축선에서 지연전을 실시했다.
제13연대는 7월 25일 함창에서 재편성 시에 제15연대에 통합되어 낙동강방어선에 8월과 9월에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시키는데 일조하였다. 낙동강 방어에 성공한 유엔군은 9월 16일에 낙동강선에서 총반격작전을 실시했다. 한편 제11사단은 9월 25일에 대구에서 창설되었다. 이때 제9, 제13, 제20연대를 예하 부대로 편성하였다. 박노창 상사는 제13연대 창설요원으로 배치되었다.
제11사단은 호남지구 공비토벌작전을 담당했으며, 작전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하여 수행했다. 제1단계 작전은 1950년 10월 1일∼10월 25일까지로 장병들에 대한 전투 훈련에 주력하면서 소규모 토벌작전을 병행한 시기였다. 제2단계 작전은 11월 1일∼12월 31일까지로 소위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 개념에 입각해 산간벽지에 있는 민간인들을 소개하고 공비의 보급로를 차단해 적을 기아 상태에 몰아넣는 한편,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여 공비 소탕에 주력한 시기였다.
박노창 상사가 소속된 제13연대는 10월 4일에 전주로 이동하여 지휘소를 설치하고 진안, 금산, 청주 일대에 작전을 담당했다. 우선 각 지구 행정기관을 복구하고 적정을 수집하는 한편, 소규모 토벌작전을 병행 실시했다. 11월 1일부터는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여 적극적인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12월 1일에 공비토벌작전을 나갔다가 1개 소대규모의 공비(북한군 패잔병)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창 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2-ㄲ-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