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익(朴魯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223065
  • 전몰일자 : 19530710

공훈사항

박노익 일등중사는 1930년 12월 5일에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후퇴할 당시, 1950년 11월 하순경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노익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방어 편성에 전념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이어서 사단은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의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 작전 시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면서 이 전선을 제3사단에게 인계하고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했다.
그 후 사단은 1952년 1월 23일 부로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 일대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적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351고지가 피탈되었으나 몇 차례의 역습을 전개하여 재탈환하면서 고지를 확보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에 제5사단의 전초기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를 공격해 왔다. 그러나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중공군은 6월 10일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했다. 사단은 3차례 역습을 하면서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으나, 북한강 동·서안의 등대리-후동-널우골을 잇는 선까지 후퇴하여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박노익 일등중사는 중공군 6월 공세 시 6월 16일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신방어진지인 등대리로 철수하다가 적 포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서울특별시 삼청동에 위치한 제36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정성스럽게 치료를 받았으나 증상이 악화되어 7월 10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익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8-ㅂ-100)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