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익(朴魯益)

  • 군별 : 육군
  • 계급 : 소령
  • 군번 : 10609
  • 전몰일자 : 19500915

공훈사항

박노익 소령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조국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군입대를 결심하고, 1946년 10월 초순 서울 태능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 제3기로 입교했다. 이곳에서 6개월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47년 4월 19일에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박노익 소령은 38도선 방어선에 부임하였다. 박 소령의 지휘 아래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T-34전차를 앞세워 공격하는 북한군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난항 속에 북한군은 6월 27일 저녁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하고, 6월 28일 새벽 서울에 진입하였다.
박노익 소령의 진두지휘 아래 장병들은 오류동 일대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7월 3일 한강방어선이 무너지자 지연전 및 재편성을 병행하며 시흥지구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사단은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으로 철수하였고, 8월 1일 안동 북쪽 일대에서 국군 제8사단을 엄호하면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박 소령이 지휘하는 사단은 8월 5일부터 적의 대규모 공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다음날 의성 일대로 다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9일 기계를 점령한 후 보현산 일대에 침투한 제766부대와 연결을 지으면서 전차 및 지원포병으로 연대 규모의 병력을 투입하고 주력을 후속시키고 있었다.
박 소령의 진두지휘 아래 사단 병력은 8월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여 기계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일병과 장병들은 9월 4일부터 경주 북방에 있는 호명리와 곤제봉, 무릉산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을 물리쳤다.
박노익 소령은 장병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그는 위기에 놓인 조국을 내 손으로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싸웠으나 끝내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1950년 9월 15일 무릉산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익 소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47판-1면-05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3-ㅂ-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