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운(朴魯云)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902570
  • 전몰일자 : 19510102

공훈사항

박노운 일등중사는 경기도 연백군 용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5월 15일 제2여단 제18연대에 입대했다. 연대는 동년 8월 10일부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박 일등중사는 1949년 9월부터 1950년 1월까지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파견되어 은파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8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덕정 일대에서 북한군 제4사단과 일전을 벌였다. 6월 29부터 7월 4일까지 한강방어선의 김포지구전투사령부에 소속되어 김포비행장-오류동-영등포-안양 일대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북한군 제6사단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7월 5일 제18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연대는 진천-청주 북방의 미호천-남일면 성무봉 일대에서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연대는 8월 3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 투입되어 길안-청송 방어선과 의성 북방의 장림리 전투, 영일군 기계전투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함으로써 기계-안강-경주 축선의 돌파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9월 15일 실시된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반격으로 전환했고,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박 일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23일 기계 북방의 운주산에서부터 적을 추격하여 청송-춘양-영월-평창-38도선 직후방의 서림리(30일)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개시한 연대는 10월 4일 간성을 점령한 후, 강원도 원통-양구-회양-신고산-안변 방향으로 우회하여 진격했다. 연대는 원산(10일), 함흥(17일)을 점령하고 28일까지 개마고원 일대에 다다랐다. 11월 4일 이 지역을 미 제7사단 인계한 연대는 동해안을 따라 진격하여 25일 청진을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계속 북진, 30일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이날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에 맞서 분전했으나 진지가 돌파당하자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싸우다 1951년 1월 2일 적탄에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운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유해(46묘역-3판-1131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ㄱ-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