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욱(朴魯旭)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5304623
  • 전몰일자 : 19500805

공훈사항

박노욱 이등중사는 1930년 2월 28일에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동에서 출생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8년 6월 5일, 그는 전남 광산의 제4연대로 입대했으나, 11월 20일에 여순10·19사건으로 해체될 때 제20연대로 개편되었다. 이후 제19연대가 1949년 1월 7일에 광주에서 서울 용산으로 이동할 때에 그는 제19연대로 전속되었고, 이후 제19연대는 1950년 4월 19일에 강원도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어 사단의 예비로서 교육훈련과 부대정비에 주력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제19연대 장병들은 원주에서 아침 7시를 기해 비상경계에 돌입했다. 박노욱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3대대 장병들은 선발대로서 오후 1시에 차량으로 원주에서 출발하여 저녁 8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제19연대 본대는 기차로 원주에서 출발하여 6월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연대는 제7연대와 협조로 소양강 북쪽의 진지를 점령했다. 제19연대는 6월 27일 새벽 5시에 북한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3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여 격퇴했다.
이후 박노욱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사단 명에 의거 오전 10시에 차량으로 춘천에서 홍천 북방의 말고개로 투입되어 제2연대를 증원했다. 이곳에서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6월 30일 오후 4시에 홍천에서 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제19연대는 7월 1일 밤 12시에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이천지역으로 투입되어 7월 4일까지 저지했다. 이후 연대는 이날 정오에 철수하여 진천 북쪽으로 이동했다. 연대는 7월 9일에 진천 지역을 수도사단에게 인계하고 수안보로 이동하여 사단에 복귀했다. 이후 제6사단은 7월 12일 아침 5시부터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한 문경지역 방어에 돌입하여 7월 말까지 문경-점촌-함창 축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박노욱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한편 제7연대는 용기동 동북쪽 고지군을 점령했다. 제19연대는 8월 5일에 방어지역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오후 2시경에 선돌주막 남쪽 고지로 이동해 새로운 진지(236고지)를 점령했다. 이어 오후 4시경에 북한군 2개 대대 규모가 방어지역 중앙의 선돌주막 부근까지 진출했으나 격퇴했다. 이날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욱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7969국)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ㄱ-09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