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완(朴魯完)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35739
  • 전몰일자 : 19500630

공훈사항

박노완 상병은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8월 초순, 경기도 의정부의 제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연대는 제7사단에 예속되어 있었다.
박노완 상병이 소속된 제9연대는 추동리(포천 서북쪽 11㎞)-사직리 간의 26㎞의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연대는 제2대대에게 38도선 경비 임무를 부여하고, 연대본부와 제1·제3대대는 의정부 북방 4km 지점인 금오리에 주둔하면서 교육훈련과 주방어진지인 천주산 일대에 대한 교통호와 산병호를 구축하였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침략했을 때, 박노완 상병이 소속된 제2대대는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 제3사단과 제4사단, 제105전차여단은 30여 분에 걸친 포병사격으로 전방의 경계진지를 유린하고 전차와 보병으로 거침없이 공격했다. 북한군 선두 전차 8대는 6월 25일 아침부터 아군의 보병 화력이나 105mm 포병사격에도 멈추지 않고 포천 방향으로 진출했다.
제9연대 장병들은 침략하는 북한군에 맞서 사격을 가하며 진출을 저지하고자 했으나, 적 전차는 큰 저항 없이 오전 11시에 포천을 점령했다. 이어 1시간 뒤에 적 보병부대는 아군부대가 배치된 천주산-가랑산을 포병사격과 함께 공격했다. 오후 2시경에 연대 주저항선이 무너졌으며, 북한군 보병부대는 4시경에 포천을 점령했다. 이에 연대 방어지역은 수도경비사령부 제3연대, 제2사단 일부 병력, 육군사관학교 생도대대 및 서울경찰대대, 그리고 재경지역 포병학교 교도대대가 6월 26일 의정부가 함락될 때까지 증원되었다.
박노완 상병은 대대 장병들과 함께 육사 교장 지휘로 불암산 동남쪽 210고지를 점령하고, 퇴계원 방향에서 공격하는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6월 28일 새벽 한강교가 폭파되고 국군이 서울에서 철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망우리고개-용마산을 거쳐 광나루로 한강을 건너 안양천 남쪽 고지에 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제9연대는 안양천 진지에서 적의 공격으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으며, 그는 6월 30일 안양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완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4판-2면-1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2-ㅇ-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