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언(박노언)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01730
  • 전몰일자 : 19511117

공훈사항

박노언 소위는 1925년 10월 13일에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에서 출생하였다. 박 소위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박 소위는 1950년 9월 12일에 종합행정학교에서 군사훈련 후 임관하여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그 후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 제1연대가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될 때 연대의 제2대대가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2대대 소속이었던 박 소위는 전후 행정 처리 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으로 정리되었다.
박 소위가 소속된 제9사단은 1951년 6월 24일에 새벽 고지 탈환을 위해 3개 방향에서 일제히 포위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빼앗긴 고지를 되찾기 위해 6월 26일 새벽을 기하여 기습공격을 가해 왔다. 사단은 맹렬한 포 지원으로 교차 사격을 하였으나 8부 능선으로 철수하여 부대를 정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제9사단은 7월 말까지 계웅산을 중심으로 한 김화지구전투에서 수차례에 걸친 적의 공격을 격퇴하였고, 아군은 1951년 10월이 되자 적군이 휴전회담을 제의한 이유가 전력 정비를 위한 시간 확보에 있음을 간파했다.
이에 아군은 일명 ‘코만도 작전’이라는 추계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치게 되었다. 이때 제9사단은 10월 5일부로 다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10월 17일에 미 제3사단이 맡고 있던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의 방어진지를 인수하여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당시 휴전회담이 진행되어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 속에서 전초진지를 탈취하기 위한 소규모 전투와 수색 정찰이 진행되었다.
제9사단은 11월 3일부터 281고지, 395고지 등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한편 휴전회담장에서는 유엔군과 적군 측이 각자 내놓은 제안에 상대방의 제안을 일정 정도 포함해 가면서 협상을 진행하였다.
마침내 1951년 11월에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정하기로 합의하였으나 박 소위는 전초진지 쟁탈전에서 앞장서 돌격을 감행하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1951년 11월 17일에 끝내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언 소위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ㅍ-02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