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순(朴魯順)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48564
  • 전몰일자 : 19520802

공훈사항

박노순 하사는 1932년 3월 25일 경상북도 영천군 고경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9월 1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선 상황은 1951년 후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이 1952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정교해지고, 그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더욱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공산군 측에 압력을 가하고 미래의 휴전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더 많은 피를 흘리는 고지쟁탈전을 기꺼이 감수하였다.
박노순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2년 3월 17일 화천으로 이동해 금성천 북안의 미주리 선에 배치되었다. 그 후 사단은 1952년 4월 5일부로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동부전선을 방어 중이었다. 박 하사와 장병들은 1952년 6월 16일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690고지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1Km의 능선), 수도고지(663고지 북 500m, 610고지)등에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이때 사단은 여호고개-여문리를 경계로 좌전방에 1연대, 우전방에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하여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박노순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새벽 1시에 621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날은 가랑비로 인해 기도비닉 유지에 유리한 반면 적정 판단의 어려움이 있었다. 북한군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면서 일시 고지 정상을 장악하였으나, 고지 서북쪽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박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말부터 주저항선을 정비하여 진지 강화에 주력하였다.
박 하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노순 하사는 정찰 활동 중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1952년 8월 2일 꽃다운 청춘을 남겨둔 채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6-ㅇ-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