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성(朴魯成)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7704400
  • 전몰일자 : 19500909

공훈사항

박노성 하사는 서울시 종로구 화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8월경 제2사단에 입대하여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전에 위치하고 있던 제5연대(-)는 전투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소총탄 8~30발 정도만 휴대하고 의정부 북방의 축석령으로 투입되었다. 연대는 6월 26일 축석령 방어선에서, 27일에는 창동 방어선에서 북한군 제3사단과 제107전차연대를 맞아 분전했으나, 적 T-34 전차를 막을 수 있는 무기가 없었던 탓에 돌파당하고 말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산 철수하여 28일 광나루에서 한강을 건넜다.
연대는 29일 밤 수원에서 긴급 재편성을 한 후,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 제2사단에 편성되어 말죽거리, 과천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한 후, 안양 남쪽의 426고지에 배치되었다. 7월 4일 북한군 제4사단은 전차를 앞세우고 제5연대 진지에 공격을 가했다. 연대는 가용한 전 화기를 집중했으나, 진지가 돌파당하자 수원으로 철수했다.
제2사단은 7월 13일 문의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7월 16일 이후 제5연대는 보은군 회인 일대와 청주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 제2사단의 공격을 지연했으나, 전투력이 극히 저하되어 7월 25일 해체되어 제11연대에 편입되고 말았다.
제7사단은 8월 20일 제3·5·8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되었다. 민부대에서 제5연대로 개편된 연대는 8월 20일부로 제6사단에 배속되어 군위군 부계 일대의 대율동, 492고지, 527고지 등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며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9월 2일 북한군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제8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15사단은 죽장-자양-영천 접근로를 중심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제8사단의 방어진지가 돌파당했고, 육군본부는 9월 2일 대구로 이동한 제5연대(-1)를 9월 3일부로 제8사단에 배속했다. 이날 자정 무렵 북한군은 공격을 가했고, 연대 장병들은 백병전을 전개하며 적을 격퇴했다.
9월 4일 연대는 기룡산 일대에 배치되어 격전을 치렀으나, 적의 공세에 밀려 영천 남쪽의 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혈전 끝에 8일까지 적의 공격을 저지함으로써 국군 제2군단이 적을 포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일련의 전투에서 박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싸우다 9월 9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성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9판-6면-17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9-ㅎ-01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