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성(朴魯聖)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980
  • 전몰일자 : 19511101

공훈사항

박노성 일병은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면(現 산청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박노성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북진작전을 진행하던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대구에서 재창설되어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지역 후방지역작전에 투입되면서 적 게릴라들을 소탕했다. 이후 사단은 가평, 청평, 춘천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완수했다.
북진을 계속하던 유엔군과 국군이 12월 초 중공군의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사단은 38도선 상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철수하는 아군의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5일부터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을 잇는 방어 진지에 투입되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박노성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 4월 및 5월 공세를 맞아 가평, 문막, 단양, 제천, 홍천, 인제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철수와 공격을 반복했다. 사단은 부대가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탈출과 재집결을 거치면서 홍천 부근 어론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그 후 사단은 6월 4일 한계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격전 끝에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의 고지들을 점령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사단은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 점령을 위해 8월 31일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10월 14일까지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북한군 3개 사단과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1,211고지를 적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으며, 현 진지를 10월 20일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1952년 1월까지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면서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을 병행했다. 박노성 일병은 1951년 11월 1일 양양 지역에서 분대원과 함께 예하연대와 유선을 가설하다가 적의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성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7면-2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ㄴ-02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