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노석(朴魯石)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12

공훈사항

박노석 순경은 1919년 5월 8일 충북 청원군 오창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북 제천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제천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유격대가 태백산 일대에 계속 침입했다. 6월 10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38도선 접경지역인 경기·강원 2개 도에 비상경비태세 강화명령(갑호비상근무령)을 내려 북한군의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박 순경은 비상대응체제와 인접 경찰지서 간 통신망 유지 상태를 점검하고 읍면단위로 대응요령을 전파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제천경찰은 지역 내 주요시설 경비, 제천-원주, 제천-충주, 제천-영월을 잇는 주요 도로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3일 박 순경은 제천 봉양읍에서 원주 방면의 도로를 경비하던 중 북한군 정찰부대로 추정되는 1개 소대규모의 적과 조우하여 박 순경의 경비 팀과 적 부대 간 교전이 벌어졌다. 약 1시간가량의 전투 끝에 박 순경의 팀은 적 3명을 사살하였으며, 박 순경의 경비 팀원도 2명이 전사했다.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여 7월 3일 영월, 7월 4일 여주가 함락되었고, 7월 6일-7월 10일 사이 충청도 지역에서는 청주-충주-제천을 연하는 선에서 전선이 형성되었다. 제천경찰은 군부대가 배치되지 않은 지역에 투입되어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제천 덕산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남진을 저지하던 제천경찰은 7월 12일 북한군의 대대적인 공격에 혼신을 다해 방어하고자 했으나 방어진지가 돌파되며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날 박 순경은 용감하게 싸워 적 2명을 사살하고 계속 전투를 수행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노석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ㄲ-02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